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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지음, 민음사), 공익적 퇴마사 일대기
보건교사 안은영 - 교보문고
정세랑 장편소설 | 직업은 보건교사, 인생은 퇴마사 귀염, 발랄, 용감…… 온갖 매력이 다 터지는 캐릭터, 안은영이 왔다! ■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의 탄생『지구에서 한아뿐』, 『덧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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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p.13
서울의 한 저소득 지역의 M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M고에는 사건 사고와 비행이 잇달아 일어난다. 어두운 사건들의 배경에는 학교의 터가 있다. 저소득 지역을 은유하는 듯한 저주받은 학교의 터는 건물이 세워지기 전 자살의 명소였고 망자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는 것이 밝혀진다.
안은영은 혼령을 볼 수 있고 그것들을 멸할 수도 있는 공익적 퇴마사다. 학교 부임 후 퇴마 재능기부로 악의 기운으로부터 학생들을 지켜준다. 이 과정에서 창립자의 손자이자 학교의 실세인 한문 교사 홍인표가 권력만큼이나 강력한 영의 기운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평소에는 홍인표와의 가벼운 신체적 터치로 소소히 기운을 흡수하고 위기시에는 농밀한 스킨쉽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양도 받는다.
이들은 악의 근원을 근절하지 않는다. 다만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뿐이다. 청소가 아닌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 배출을 하는 작업이며 노련한 직장인이 모든 업무가 아닌 중요도에 따라 업무를 골라 쳐내듯 관할 구역 내 악을 쳐낸다. 이를 반영하듯 소설은 주간업무보고서 같이 몇 개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사회적인 이슈 중에서 소재를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사랑해 젤리피시'편은 학교 사유화, '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는 빈곤, 지역간 빈부격차, '럭키, 혼란'은 청소년 비행, '원어민 교사 매켄지'는 왕따, 약물, '오리 선생 한아름'은 동물권, 교사의 과중한 잡무, '레이디버그 레이디'는 입양가족, '가로등 아래 김강선'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전학생 옴'은 여성 지위 상승, '온건 교사 박대홍'은 한국사 국정교과서, '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는 소수자(장애인, 동성연애자)에 대한 편견과 멸시 등이 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이슈들이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결코 어둡지 않다. 판타지 혹은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성,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드립으로 표현되는 해학적인 문체, 안은영과 홍인표의 동료인 듯 연인인 듯 간질간질한 연애 스토리 덕분이다.
안은영과 홍인표는 결이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선생님이라는 같은 영향력 아래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으며 섞여간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부의 넘치는 사랑으로 불운이 넘쳐 다리를 저는 신체적 약자가 된 인표, 부모의 이혼으로 애정과 살림이 흩어져 결핍을 맛봐야 했던 은영. 인표가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공격을 당할 때 은영은 강인한 생존력으로 다져진 두려움 없는 성격으로 인표를 구해낸다. 반대로 매우 강한 적이 은영의 에너지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인표가 조부의 넘치는 사랑이 만들어낸 보호의 기운을 주입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노브라 운동에 헌신할 의향을 내비치고 여전사 같이 진취적인 은영이 정작 인표와의 관계에서는 조신하게 망설이다가 경쟁자의 등장에 맥없이 포기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신중한 성격의 인표가 약한 다리로 선을 넘음으로써 진화한다. 언뜻 보기에는 인물의 성격상 모순적이고 전통적인 남성관 여성관을 드러낸 한계로 보일 수 있으나 성 역할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사고를 해본다면 이는 은영의 애정 결핍이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고 그렇지 않은 인표가 애정을 넘치게 채워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 p.275, 작가의 말
작가는 말미에 쾌감이 소설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소설이 매우 코믹하고 참신한 드립이 넘쳐 읽는 내내 즐거웠다는 점에서 작가와 독자 공동의 심정을 대변할 수도 있겠으나 완전히 같지 않아 '독자의 쾌감'보다 '작가의 쾌감'이 더 많은 쾌감을 포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길지 않은 각 에피소드 내에 작가는 사회 이슈들을 분량에 쫓기듯 집약적으로 배치해 놓았다. 이 중 상당수는, 모두들 알고 있지만 떠올리면 가슴 아파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피를 차갑게 식혀 외면하는 유의 이슈들인데,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비인간성을 직시하게 되고 작가의 세심한 잔인성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언급은 하고 있으나 답답하게 해결은 하지 않거나, 언급과 동시에 소설 속 인물의 혀를 놀려 작가의 생각이라 보여지는 사상으로 일침을 날린다. 독자를 괴롭히며 쾌감을 느꼈을 작가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이 소설의 맛은 ≪아몬드≫의 자두맛 캔디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다음 독후감은 ≪아몬드≫입니다.
두 사람이 자두맛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단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묘하게 반짝이는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쓰윽 그어진 자두맛 캔디. 그걸 입 안에서 굴리는 건 둘의 소중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 빨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일쑤였다.
―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
-- ≪아몬드≫, 손원평 지음, 창비, p.38(창비청소년문학 판)
아몬드 - 교보문고
손원평 장편소설 | 공감 불능 사회, 차가움을 녹이는 아몬드“고통과 공감의 능력을 깨우치게 할 강력한 소설”영화보다 강렬하고 드라마처럼 팽팽한, 흥미로운 소설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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